윤희에게(Moonlit Winter, 2019)

 


쥰에게

잘 지내니? 네 편지를 받자마자 너한테 답장을 쓰는 거야.

나는 너처럼 글재주가 좋지 않아서 걱정이지만.

먼저, 멀리서라도 아버님의 명복을 빌게.
나는 네 편지가 부담스럽지 않았어.
나 역시 가끔 네 생각이 났고, 네 소식이 궁금했어.
너와 만났던 시절에 나는 진정한 행복을 느꼈어.
그렇게 충만했던 시절은 또 오지 못할 거야.
모든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전 일이 돼버렸네?
그때, 너한테 헤어지자고 했던 내 말은 진심이었어.
부모님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내가 병에 걸린 거라고 생각했고,

나는 억지로 정신병원에 다녀야 했으니까.
결국 나는 오빠가 소개해주는 남자를 만나 일찍 결혼했어.
이 편지에 불행했던 과거를 빌미로 핑계를 대고 싶진 않아.
모두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해.
나도 너처럼 도망쳤던 거야.
그 사람과 내가 결혼식을 올리던 날,

우습게도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이 너였어.

모르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,

이곳을 떠난 네가 행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어.

쥰아.
나는 나한테 주어진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어.
그래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벌을 주면서 살았던 것 같아.
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?
나도 더 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.
그래,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.

마지막으로 내 딸 얘기를 해줄게.
이름은 새봄.
이제 곧 대학생이 돼.
나는 새봄이를 더 배울 게 없을 때까지,

스스로 그만 배우겠다고 할 때까지 배우게 할 작정이야.
편지에 너희 집 주소가 적혀 있긴 하지만,

너한테 이 편지를 부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.
나한테 그런 용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?
이만 줄여야겠어.
딸이 집에 올 시간이거든.
언젠가 내 딸한테 네 얘기를 할 수 있을까?
용기를 내고 싶어.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야.

추신. 나도 네 꿈을 꿔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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앞으로 윤희와 쥰 둘은 각자 잘 살아갈 것이다.
가끔씩 서로가 보고 싶어질 땐
꿈에서 만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 편히 나눴으면 한다.
“굳이 꿈에서?”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
현실에서 앞으로 둘이 계속 편지를 주고 받는 건
너무 내 욕심 같다고 느꼈다.

그리고 이 영화를 5월에 봐서 그런지
윤희의 편지 부분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 다시 마지막 부분을 보고 왔다.
그리고 지금 든 생각은
과연 그 편지는 쥰에게 보내졌을까?

정말 연락이라는 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정성, 그리고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
그 편지를 아직까지 부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.
하지만 마지막에 용기를 내고 싶다고 말하는 윤희의 목소리를 듣고
그 편지는 편지의 주인에게 잘 전달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.

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해서
그 편지가 쥰에게 도착하지 못했더라도
윤희의 편지를 통해서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
오히려 마음이 편했다.

아무튼 윤희에게는 정말 좋은 영화이고
겨울에 이 영화를 다시 보고싶다.

 

 

 

yunicorn